2025-01-26 HaiPress
미국 캘리포니아주 구글 연구소에서 양자컴퓨터의 열을 식히고 있는 저온 냉장고.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몇 년간 미래를 확 바꿔놓을 대표적 기술로 꼽히는 것들이 있어요. 인공지능(AI),자율주행 자동차,양자컴퓨터 같은 첨단 기술들이죠. 아마 AI나 자율주행은 어떤 기술인지 다들 어느 정도 감이 오실 것 같아요.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이름부터 조금 어렵고,아직 어떤 기술인지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에요.
양자컴퓨터는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평가를 받아요. 하지만 챗GPT 등장 이후 이미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는 AI 기술이나,세계 곳곳에서 도로를 누비고 있는 자율주행차와 달리 아직 대중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는 이루지 못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이 기술을 두고 논쟁이 꽤 뜨거워요.
고공 행진하던 양자컴 회사들
양자컴퓨터는 꽤 오래전부터 주목받아 온 기술이에요. 기존의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으로 세상을 바꿀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죠.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구글이 성능을 확 끌어올린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대대적으로 밝히면서,정말 많은 사람이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구글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양자컴퓨터 칩 ‘윌로’ <자료=구글>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슈퍼컴퓨터인 ‘프런티어’가 10자(10²⁵)년 걸려 풀 수 있는 문제를 구글의 양자컴퓨터는 5분 만에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성능이라고 해요. 사실상 어떤 슈퍼컴퓨터로도 풀 수 없는 문제들을 뚝딱 풀어내는 마법 같은 수준인 거죠.
아직 상상하기도 힘든 수준의 성능이다 보니,구글이 처음 이 양자컴퓨터를 발표했을 땐 암호화폐를 포함한 가상자산 시장이 출렁이기도 했어요. 암호화폐는 기존 컴퓨터로 뚫을 수 없는 고도의 보안성이 강점인데,양자컴퓨터는 이조차 풀어버릴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나왔기 때문이에요. 물론 아직 그 수준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었다는 분석이 우세하긴 하지만,양자컴퓨터가 많은 것들에 영향을 줄 거라는 사람들의 예상을 엿볼 수 있는 현상이었어요.
이번 달 7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기술) 박람회인 CES 2025에도 양자컴퓨팅 부문이 신설돼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양자컴퓨터,뭐가 다른 걸까?
양자컴퓨터는 반도체를 기억소자(데이터 저장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원자’를 기억소자로 활용해요. 정말 작은 단위인 만큼 현대물리학 분야인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대요. 사실 일반인이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개념이죠. 기존 컴퓨터보다 연산 능력이 비약적으로 개선된다는 것 외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을 때,살펴볼 필요가 있는 용어는 바로 ‘큐비트’예요. 혹시 기존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정보 처리 단위인 ‘비트(Bit)’를 아시나요? 바이트(Byte)의 8분의 1,메가바이트(MB)의 838만 8608분의 1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단위인데요. 양자컴퓨터는 비트 대신 큐비트(Qubit) 단위로 정보를 처리해요.
비트가 ‘0’이나 ‘1’ 중 하나의 이진법 정보를 처리해 0과 1의 조합인 데이터들을 구성하는 것과 달리,큐비트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요. 동시에 여러 상태를 갖는 양자역학 현상을 이용한 결과죠. 이 원리를 활용해 양자컴퓨터는 훨씬 더 빠른 연산이 가능한 거라고 해요.
취약점은 오류 발생률
조금 어렵긴 해도,결국 양자컴퓨터 활용이 본격화하면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해요. AI 학습 속도가 빨라져 AI의 수준도 엄청나 질 거고,자연스럽게 자율주행이나 로봇 기술도 급격히 발전할 수 있어요.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우주공학 같은 분야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라는 예상이 많이 나와요. 흔히 비약적인 발전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퀀텀(Quantum‧양자) 점프’라는 말을 쓰는데요. 정말 대부분의 분야에서 퀀텀 점프가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다만 양자컴퓨터는 워낙 예민한 장치이다 보니,온도‧진동‧전자기장 같은 작은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아요. 모든 물질의 분자활동이 멈추는 절대영도(-273.15도)에 가까운 온도에서 작동하는 등 관리가 어렵고,이 때문에 오류율을 억제하는 것도 꽤 어려운 과제라고 해요. 최근 양자컴퓨터의 오류 발생률은 약 0.1%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게 생각보다 정말 큰 숫자예요.
별로 큰 숫자 같지 않지만,만약 자율주행 기술에 적용할 경우 100km를 달리는 동안 100m 구간에선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 100m 구간에서 어떤 큰 사고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고요. 물론 구글이 지난해 말 공개한 양자컴퓨터용 ‘윌로(Willow) 칩’은 오류 발생률을 많이 낮췄대요. 점점 개선되고 있는 거죠.
젠슨 황 한마디에 반전된 분위기
이렇게 기대감이 커지는데,AI 산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이달 7일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붓는 발언을 했어요. 젠슨 황 CEO는 “양자컴퓨터 기업과 협력하고 있지만,(앞으로) 15년은 유용한 양자컴퓨터의 초기 단계이고 30년 후는 아마 후기일 것”이라며 “20년이라면 많은 사람이 믿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이 발언은 양자컴퓨터 기술이 일반적으로 유용해지려면 20년은 걸릴 거라는 뜻으로 해석됐어요.
*단위: 달러 이 발언이 알려진 뒤 양자컴퓨터 관련 미국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했어요. 양자컴퓨터 기업인 ‘아이온큐’는 하루 만에 39% 하락했고,지난해 10배가량 주가가 오르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리게티컴퓨팅도 45.41% 급락했어요. 디웨이브퀀텀(-36.13%),퀀텀컴퓨팅(-43.34%) 같은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였어요. 물론 관련이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급락세를 면치 못했죠.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주 인터뷰에서 “양자 기술은 진정한 실용적 패러다임과 거리가 꽤 멀다”고 발언해 이런 분위기를 더 심각하게 했어요. 저커버그 CEO 발언 이후에도 양자컴퓨터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급락세를 보였어요.
*지난 1월 9일 주가 하락률/단위: % “아직 멀었다” vs “곧 다가온다”
세계적 영향력이 큰 엔비디아와 메타의 두 CEO가 부정적 전망을 내놨지만,마이크로소프트(MS)는 양자컴퓨터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지난 15일 (미국 현지시간) 미트라 아지지라드 MS 전략기술부 대표는 MS의 한 게시판에 “양자컴퓨터 원년이 도래했다”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리고,양자컴퓨터 시대 준비를 위한 준비 프로그램을 발표했어요.
양자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사업가와 연구자를 모아서 생태계를 구축하고,관련 소프트웨어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었어요. 그는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시대의 시작점에 있다”고 강조했어요. ‘20년은 걸릴 것’이라는 젠슨 황 CEO의 예상과 달리,이미 양자컴퓨터 시대가 시작점에 와 있다고 반박한 셈이에요.
젠슨 황과 마크 저커버그의 부정론에 폭락했던 양자컴퓨터 기업들의 주가도 MS의 발표와 다른 전문가들의 긍정 평가에 힘입어 조금 회복세로 돌아섰어요. 그야말로 이 기업들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어요. 금융업계는 양자컴퓨터 기업들의 주가 변동 폭이 커지자 ‘신중하게 투자해 달라’는 조언을 쏟아내기 시작했고요.
세계 첨단 기술 업계를 이끄는 기업들이 일제히 언급하는 걸 보면,확실히 양자컴퓨터가 세상을 바꿔놓을 만한 엄청난 기술은 맞는 것 같은데요. 그 잠재력이 우리 세상을 뒤집을 시기는 언제쯤일까요?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지 지켜봐야겠네요.
매일경제 ‘디그(dig)’팀이 연재하는 <뉴스 쉽게보기>는 술술 읽히는 뉴스를 지향합니다. 복잡한 이슈는 정리하고,어려운 정보는 풀어서 쉽게 전달하겠습니다. 무료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디그 구독하기’를 검색하고,정성껏 쓴 디그의 편지들을 만나보세요. 아래 주소로 접속하셔도 구독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s://www.mk.co.kr/news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