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5 HaiPress
GS건설 일산데이터센터
1년 밀리고 겨우 삽떴지만
아직도 ‘삭발시위’ 등 계속
주민설명회만 5차례 개최
전자파 검증 결과 공유해도
지역정치인 “못믿겠다”
투자·일자리 효과엔 입닫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 주민 반대와 고양시 행정제재 등 끝에 작년 말 착공했지만 공사 진척이 저조한 상황이다. [이승환 기자] 대한민국 한쪽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 구축이 시급하다고 하고,다른 한쪽에서는 AI 핵심 인프라스트럭처인 데이터센터 건립을 극구 반대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다.
24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아파트 외벽에는 데이터센터를 반대하는 펼침막이 1년 넘게 붙어 있었다. ‘GS건설은 데이터센터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 ‘고양시장은 책임지고 사퇴하라’ 등 분노에 찬 문구가 빼곡했다. 이 아파트 인근에 건설 예정인 데이터센터에 대한 성토다.
데이터센터는 작년 3월 건축허가까지 받았지만,인근 주민들이 반발했다. 지난 총선 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보들이 데이터센터 반대에 동참했다. 초기에 데이터센터 유치에 반색했던 고양시는 착공 신청을 반려했다.
착공 지연에 따른 비용이 급격히 늘자 GS건설이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가 GS건설 손을 들어주며 당초 예정보다 10개월이 지난 후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든 공사가 중단될 수 있다. 이곳을 지역구로 둔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작년 말 데이터센터 건축허가 직권취소와 GS건설의 사업 철수를 요구하며 시·도의원과 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삭발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데이터센터 공사현장 뒤편 아파트에 착공을 취소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충우 기자] 주민들은 전자파,소음,백연현상 등으로 주민 건강이 악화된다는 ‘괴담’에 휘둘리고 있다. 세수 증가,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이점에는 귀를 닫았다.
지난 21일 본지 취재진이 김포시 구래동 데이터센터 공사 현장에서 만난 인근 주민 A씨는 “전자파도 문제인 데다 냉각탑에서 화학물질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또 전력을 많이 써야 하니 정전도 발생할 수 있고,데이터센터 때문에 집도 잘 안 팔린다고 들었다”고 했다. 덕이동에서는 시공사 측이 주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설명회만 다섯 차례 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철저히 밀폐된 방어시설로 구축된 데이터센터는 건물이 설령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측정 시 전자파가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력시설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극저주파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미미하다는 것이 대다수 과학자들의 결론이다. 그래서 미국,일본,싱가포르 등은 데이터센터가 도심 한복판은 물론 주거단지나 학교 인근에도 지어진다.
24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 [이승환 기자] 미래전파공학연구원이 데이터센터 주변과 인근 관심 시설 29개 지점에서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설비기술 기준으로 정한 인체보호 기준(833mG)의 1.5%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기밥솥보다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설치 당시 전자파 논란처럼 주민의 공포감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 고양시가 작년 2월 데이터센터 유·무해성에 대한 설명회를 추진했지만,주민 반발로 무산됐다.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까지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등 정치권이 가세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20일 열린 고양시의회 본회의에서는 ‘식사동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촉구결의안’이 통과됐다. 안건 심사 과정에서 한 시의원은 “데이터센터 용지 내 숲과 인근에 너구리,오색딱따구리,말똥가리,직박구리,유리딱새 등 다양한 생물체가 서식한다. 생태계를 파괴하면서까지 데이터센터를 건립해야 하느냐”는 황당 주장을 했다.
AI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용지(최소 1만㎡ 이상)가 필요하며 충분한 전력 공급과 인프라,전문인력을 갖춘 지역에 위치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수도권 배치를 우선시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는 산업단지 외 지역에 대한 엄격한 용도제한이 있고 주민 반대로 인한 민원 리스크가 발목을 잡고 있다.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기준 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 용도로 인허가를 받은 총 33건 사업 중 절반 이상인 17곳이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거나 지연됐다. 인허가를 받은 사업 중 35%가 1년 이상 착공하지 못했고,공사를 진행 중인 사업 중 약 30%는 인허가 후 착공까지 1년 이상 소요됐다. 세빌스는 과거 4년간 개발된 데이터센터들이 인허가 후 평균 4~5개월 내 착공했던 것과 비교하면 다수 사업이 계획했던 일정 대비 지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예 데이터센터 건설이 무산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앞서 네이버는 2019년 용인시에 데이터센터 ‘각 용인’을 지으려고 했으나 일부 주민과 지역 정치권 반발로 무산됐다. 네이버는 이후 ‘각 세종’을 세종시에 준공했다. 네이버는 48개월의 각 세종 건설기간에 생산 유발 7076억원과 취업 유발 효과 3064명을 거둔 것으로 추산했다.
AI 개발 가속화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한국에서는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는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의 클라우드 이용률은 30%에 불과해 잠재력이 높은 데다 AI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하이퍼스케일 등 다양한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4년 단 4개 데이터센터만이 완공됐고,2025년 전력계통영향평가 시행으로 인허가 리스크가 커지며 2026년부터 대규모 공급을 예상했지만 계획한 물량의 절반만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돼 타이트한 수급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포·일산 = 박재영 기자 / 서울 = 황순민 기자 / 김유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