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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대충 땜빵으로 살면 되지”...‘소비의 나라’에서 소비 덜하는 기쁨 [워킹맘의 생존육아]

2025-08-20 HaiPress

[사진출처=픽사베이] “엄마,핫팟 먹고 싶어.”

미국에서 꽤 유행하고 있는 식당 중 하나는 무한 리필 핫팟(hotpot)·샤브샤브 식당이다. 1인당 비용을 내면 무제한으로 고기와 야채,국수 등을 비롯한 각종 재료를 끓고 있는 육수에 담아 먹을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무한리필 샤부샤부 집과 비슷하고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가족 외식 장소로 인기가 많다.

한국에서도 종종 가족들과 비슷한 식당에 갔던 아이는 미국에서도 핫팟 식당이 마음에 들었는지 양껏 식사를 했다. 하지만 미국의 외식 물가가 상당히 높고,아이와 어른 모두 식사를 많이 하는 대식가들이 못되어 무한 리필 식당을 자주 가기에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간단히 육수를 내어 버너 혹은 이동이 가능한 휴대용 인덕션에 냄비를 올려두고 집에서 쉽게 샤브샤브를 해 먹었으니,여기서도 한번 해 볼까 싶어 청경채,배추,고기 등 재료를 사 왔다.

하지만 나는 잊고 있었다. 내 집에는 버너도,1인용 인덕션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1구 인덕션에 조리할지,가스버너를 쓸지 고민을 하던 사치는 옛말이었다. 물론 필요하면 사면 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한인 마트인 H마트에는 나 같은 사람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가스버너가 마트 한쪽도 아니고 정 중앙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한국인이라면 주말에 식탁에 둘러앉아 가스버너 위에 불판을 올리고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일상을 즐겨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나 나의 문제는 이 삶이 1년짜리 시한부라는 데 있다. 여러 해 미국에 거주해야 한다거나 아예 정착할 생각이라면 (한국보다는 비싸지만) 값이 많이 나가지 않는 물건들은 쉽게 구매했을 텐데 이제는 몇 달도 채 남지 않은 미국살이를 위해 자꾸만 새로운 물건을 사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필요해서 산 물건들이 있지만 처분하고 가는 일이 만만치 않아 소비했을 때의 행복감이 예전보다 크게 떨어졌다.

아,어차피 식탁에서 끓일 수 있는 도구가 없으니 그냥 주방에서 다 끓인 후에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조차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집 어린이들은 마치 식당에서 먹는 것처럼 보글보글 식탁 위에서 끓여서 먹는 핫팟을 먹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 내 눈에 뜨인 것은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두고 간 전기밥솥이었다. 압력 기능이 없고 뚜껑도 냄비뚜껑처럼 분리되는,가열과 보온 기능밖에 없는 일본 브랜드의 구형 밥솥이었는데,과연 밥이 되기는 할까 싶어 여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꽤 오래 외면해온 이 밥솥은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며 이날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샤브샤브를 먹는데 가열과 보온 말고 필요한 기능이 뭐가 있겠는가. 압력,만능찜,죽,잡곡밥 기능 같은 것은 모두 샤부샤부앞에서는 사족일 뿐이다. “너무 맛있어,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어”를 연발하는 딸들 덕에 나의 행복지수는 최고조로 올라갔다. 남편은 밥솥에 끓여먹는 샤브샤브가 재미있는지 사진을 찍어대기도 했다. 이후에도 우리는 이 밥솥을 이용한 샤브샤브를 실컷 해먹으며 추억을 쌓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는 말을 타지살이 속에서 여실히 체감한다. 수납함이 부족하면 선반이나 수납 상자를 사는 대신 마트에서 샐러드 채소를 산 후 나오는 상자로 해결했다. 아이들의 소품을 모으는 작은 상자는 뚜껑을 여닫기 쉬운 반찬 통으로 대체했다. 새로운 물건을 사는 대신 진 안 구석구석에서 쓸모에 맞는 대체용품을 찾아낼 때의 희열은 새로 물건을 살 때의 즐거움만큼이나 컸다.

미국은 소비의 나라라지만,한국에서 늘 무언가 부족할 새가 없이 살아온 우리 가족은 오히려 미국에 와서 ‘덜 소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장난감이 넘치도록 있는 데도 늘 갖고 놀 장난감이 없다며 새로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들은 어느 날부터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오려서 가지고 놀거나,자기만의 책을 만들어 엄마·아빠에게 읽어준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부족한 듯 살아본 시간이 준 순기능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우리는 지금처럼 약간은 결핍을 느낄 여유를 가져보려 한다. 무작정 쇼핑몰 결제 버튼을 누르는 대신 우리 가족들이 궁리할 시간을 더 많이 줘야지. 지갑이 두툼해지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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